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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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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ject | 그때 그사람: 털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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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5월 전후의 어느날이었다
중학교 합반교실이었다
토요코스 때 그 위에서 자기도 했던 나무판이 한치 반이나 되게 두꺼운 6인용 실습대에 등받이 없이 빙빙 돌아가는 의자에 앉아 두 반씩 묶어 공부했고
칠판에 전세계지도를 논스톱으로 몇십 초만에 그려놓고 가르치시던 선생님의 세계사와 생물시간에 많이 사용했던 방이다.
그 생물시간에 선생님이 불러주었다
“자 불러줄테니 적어라..”
칠판에 판서하는 것도 아니고, 경상도 사투리에 된소리로 문단번호, 줄바꾸기, 칸띄기까지 친절히 또박또박 불러주었다
아무래도 내용이 익숙해서 내가 가진 참고서를 보니 똑같은 것이었다
2학년 올라가서 참고서를 사려는데 남들이 사는 것은 비싸서 망설이는데
민중서관에서 나온 특이한 참고서가 막 나온 때였다. 처음 나왔고 학기가 시작된 이후에 나와 잘 알려지지 않은 노란표지에 얇기는 대학노트만한 것이
토씨 빼고 주요단어중심, 요점중심으로 그야말로 수업시간에 필기해주는 형식
그대로 였다
아주 맘에 들어서 과목별로 샀었는데...
한 두 주일 지나봤지만 글짜하나 틀리지 않고, 문단 형태까지 그대로 판박이였다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그렇지 어떻게 참고서를 100% 그대로 불러주는 걸가
자기 것은 하나도 없단 말인가
차라리 참고서를 사라고 그러지
처음엔 책상 밑에 숨겨 놓고 필기하면서 비교해보다가
나중엔 아예 집에서 미리 노트에 적어가서는
선생님이 “이건 중요한 거다. 잘 받아 적그라” 하며 불러주는 것을 이미 집에서 써 온 것을 보면서 조그맣게 속으로 같이 읽어 주었다
주위의 아이들도 그것을 알고 함께 삐쭉대고, 어떤 아이들은 참고서를 사기도
하였다
이쯤되면 선생님이 어찌 영이 서겠나
우리 여기서 그 선생님의 이름은 거명하지 말기로 하자
오늘 주인공은 그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누가 질문을 했다
“거.. 아-쭈 좋은 질문을 했다. 오늘 진도하고는 다르지만 훌륭한 질문이니 내가 특별히 설명을 해주지”
한쪽 입꼬리를 당기며 어깨를 으쓱하더니
그렇게 특별히 좋은 질문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뭐나 큰 인심쓰듯이 말문을 여는 순간 내 입에서 “아-쭈”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방은 실습대가 세줄로 되어 있었는데 나는 가운데 줄에 앉았고, 오른쪽 줄에서도 낮으막히 들렸다
생각밖에 내소리가 들릴 정도여서 움칠했는데
“누-가?, ” 소리를 들었는지 싸늘하게 식은 소리로 표독스럽게 노려보며 물었다
“아-쭈? . 누우-가?” 시선을 보니 왼쪽 줄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소릴 한 친구가 나말고 오른쪽에만 있었는지 알았더니 왼쪽에서도 그런 녀석이 있었나 보구나
모두들 긴장하고 사태를 주시하고 있는데
내가 했다고 하자니 어차피 왼쪽을 찍었는데 괜히 나서서 매를 벌고
화만 더 돋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왜 그랬냐고 물으면 필기하라고 해놓고 참고서를 글짜 하나 안틀리고 불러주어서 비웃는 마음이 있어서라고 어떻게 얘기하냔 말이다.
그렇다고 다른 핑계를 대자니 딱히 생각도 안들었다
“말 안하겠나?”
지글거리는 눈 빛으로 교단에서 내려와 통로를 사자가 먹이 노리듯 닥아와
내 왼쪽을 지나 두어 책상 쯤 뒤에 가더니
“니-나? 니-나?” 몇 명 묻다가 , 한 아이가 대답을 못하자
두 번인가 재차 묻다가
“나와” 하고는 교단으로 데려가 엉덩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뒤로 쳐다보지도 못하다가 앞으로 나간 그 아이를 보니 평소 심성이 너무 착하여
누가 생각해도 그럴만한 아이가 아니었다
거기다가 보이스카웃 단원이긴 하지만 몸이 가냘픈 아이였다
어! 쟤는 아닌데.. 그럼 뭐지, 아마 누가 나서지 않으니 자기가 야단 맞아주면 모두들 편해지겠지 생각한 것 아닐까.
그랬다고 대답한 것도 아니고 아니라고 대답을 못(안)하자 그 선생은 단정한 것같다
수십대를 이를 악물고 때리고도 분이 안풀린 선생은
“반장 나와”불러서 엄살 끝에 내가 십여대를 맞았고
부반장을 불러내어 덩치좋은 부반장은 나보다 배를 때리고 그렇게 수업은 끝났다
그리고는 사실 그 후로 비겁하게도 말을 못건냈다
너무도 미안하기도 하고, 그 근처에서 다른 아이가 했는데 나까지 고백할 필요까지 있을가 싶기도 했고, 그렇다고 시치미 떼고 위로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살아오면서 늘 마음에 빚으로 남아 이따금 생각나곤 했었다
** ** **
몇 년전 누군가 자녀 결혼식에 동창들이 참 많이 모였다
그 중 키는 큰 게 얼굴엔 온통 수염이 덥숙한 녀석이 날 보고 눈길을 준다
누굴가 생각해도 도시 짐작이 가지 않는다
“나 누군지 알겠어?” 못알아 봐서 겸연쩍어 하는 나에게 알려준 이름은
바로 중2때 그 약하고 순진한 그 녀석이었다
“나 늘 물어버고 싶은 게 있어 ,너 그때 정말 그랬었니? ”
세월이 지나서, 물어 볼 만큼 뻔뻔해진 걸가. 궁금한 걸 물었다
시인도 부인도 안하던 그 녀석은 빙긋이 웃었다
“ 그래도 그게 인연이 되어 생물을 전공하게 되었어”
참 아이러니한 인생이지. 생물을 그것도 아주 즐겁게 좋아서 연구하고 있다
다시 만난 이후 곰곰이 생각해보니 선생은 교단 한 쪽 끝에 서 있었으니, 그애와 나와 거의 일직선상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생각에 조금 멀리서 들렸다고 생각했으면 통로 건너 그 쪽 쯤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더더욱 내가 못할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빙긋 웃던 웃음이 더욱 가슴에 남는다
털보야
미안하다
용서해다오
사랑한다
******* ******
사실 이 사연은 나의 “그때 그시절”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삼고 싶었다
그러나 오늘 들려주어야 할 것 같다
부활절 새벽기도 중에 또 그 생각이 났고
그러기에 더 뜻깊게 느껴지는 금년 부활절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기독교에서 부활절로 지낸다
간단히 쉽게 얘기하지면
“인간들은 죄를 많이 지어서 죽을 수 밖에 없는데,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우리 인간들 대신 죽었다. 그런데 아주 죽은게 아니고 다시 부활하셨으니 그걸 깨닫고 시인만 하면 우리도 천당가서 영원히 산다 ”
이런 얘기다
잘못한 일 없는 그 녀석이 대신 잘못을 뒤집어씀으로, 잘못한 놈이 무사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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