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졸업무렵 쯤으로 기억하는데요, 평소에 보던 것과는
좀 색다른 서부영화가 나왔습니다.
1964년에 제작된 ‘황야(荒野)의 무법자(無法者)’... 라는 서부영화
였습니다.
‘OK목장의 결투’나 ‘하이눈’ 같은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한 정통 서부극의 틀을 깬, 필요 이상의 폭력을 일삼고 무법자
스타일의 총잡이가 나오는...
원래의 서부영화 다운 멋이란 없고, 의리나 신사도도 없고 뒷통수에다
대고 총도 막 쏘고...
세르지오 레오네라는 이탈리아 사람이 감독한 이탈리아제 서부
영화라고 해서 ‘마카로니 웨스턴(Macaroni Western)’이라고 했지요.
이때 함께 알려진 영화 음악가가 엔니오 모리코네라는 이탈리아
사람이었지요.
주인공으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라고 서부영화에서는 처음 보는
미국인을 썼습니다.
그런데 사실 마카로니 웨스턴이란 말은 일본사람들이 만들어 낸
일본식 영어입니다. 본토 영어로 하면 스파게티(Spaghetti) 웨스턴
이라고 합니다. 마카로니나 스파게티나...
어쨌든 그 ‘황야의 무법자’라는 영화는 꽤 괜찮은 반응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스토리야 뻔하지요.
조용한 마을에, 뭔가 사연이 있는 듯한 총잡이 나타나서는 그 마을을
근거지로 뜯어먹고 사는 악당들한테 신나게 얻어터지고, 나중에는
재빠른 총솜씨로 악당들을 다 쏴죽이고 다시 떠나는...
그런 내용이지요.
늘 시가를 물고 있었지요. 다 떨어진 망토를 걸치고...
이야기의 배경은 멕시코인데 촬영은 주로 스페인에서 했다는군요.
‘황야의 무법자’는 명보극장에서 개봉되었었는데 38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 극장가의 손익분기점이
3만 명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흥행이었지요.
뻔한 내용의 이런 영화가 힛트를 하더니 바로 속편이 나왔습니다.
하기야 그 때는 서부영화란 서부영화는 모두 속편을 만들어
냈으니까요.
1965년 ‘석양의 건맨’이라는 영화, ‘속(續) 황야의 무법자’라고도
했지요. 현상 수배자가 등장하고 또 그 뒤를 쫓는 현상범 사냥꾼도
등장하고... 하더니 악당들을 다 쏴 죽이고 또 정처없이 떠나는 건맨...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세르지오 레오네가 1966년에 만든
이탈리아식 세번째 서부영화가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입니다.
출연진은 앞의 영화와 같은데 이 영화를 흉내내서 국내에서 만든
영화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입니다 그려. 이병헌, 정우성,
송강호가 나왔던...
악당에는 2종류가 있지요.
원래부터 그 지역에서 권력 밑에 붙어서 주민들에게 세금을 뜯어내고
갑질을 하는 조폭같은 붙박이 악당들이 있고, 잠시 마을에 들어와서
은행을 털기도 하고 부녀자들을 괴롭힌다거나 나쁜 짓을 하는 떠돌이
악당 등...
이런 악당들을 보안관이 물리치는 스토리는 뻔한 공식이기 때문에
재미가 없고, 얼굴도 모르는 떠돌이 총잡이가 나타나서 악당들을
청소하고 또 다시 떠나는 스토리가 미련도 남고 재미가 더 있지요.
악당들은 대개 떼거리로 몰려다니지만 떠돌이 건맨은 늘 혼자
다닙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1964년과 1975년 사이에 이런 이탈리아식
서부영화가 특히 많이 만들어졌는데 68년 한해에만 75편의 스파게티
웨스턴이 만들어졌다는 통계가 있으니 그 인기를 짐작할만 하군요.
비슷한 아류의 영화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 수많은 스파게티 웨스턴 중에서도 차별화를
할 필요가 있었겠지요.
1966년에 나온 ‘쟝고(Django)’라는 영화는 기존의 황야의 무법자
시리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만든 서부영화였는데요 결과적으로는
스파게티 웨스턴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총잡이가 관을 끌고 다닙니다. 분위기부터 으쓸
하지요.
현상범을 잡아서 관 속에 집어 넣겠다는 설정 같습니다만...
이 영화에서는 마치 연탄 구멍같이 생긴 기관총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악당들을 대량으로 마구마구 쏴 죽이고...
그러더니 나중에는 ‘내 이름은 튜니티’라는 괴상한 서부영화도
나왔습니다(1970).
코미디물 같았는데. 이건 서부영화인지 뭔지 애들 장난도 아니고...
타락한 서부영화의 끝을 가는... 그런 영화도 있었지요.
그러다가 1973년에는 ‘무숙자(無宿者)’라는 스파게티 웨스턴이
나왔는데 이 영화에 거물급 미국 배우 ‘헨리 폰다’가 나옵니다.
헨리 폰다는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서부영화와는 손을 끊었는데요,
왜 헨리 폰다같은 대 배우가 테렌스 힐같은 애들하고 이런 이탈리아식
서부영화에 얼굴을 디밀었는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기존의 고전적인 서부영화의 틀을 깨는 이런 류의 서부영화를
수정주의 웨스턴이네 뭐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어려워지므로
그만 하고 어쨋든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서부영화도 결국은 권선
징악의 테두리 안에서 흥미유발을 기본으로 하는 서부영화의 또 다른
장르가 되었습니다.
며칠 전에 TV에서 ‘황야의 무법자’를 틀어주길래 몇자 끄적거려
봤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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