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 지인들로부터 연하장을 받은때가 어제인가 싶더니 벌써 또다른 연하장을 받아본다. 그리고 또 한해를 보내는 길목에서 나를 만난다.알듯 모를듯 숙연해지는 마음을 감출수가 없다.
지난 9월초,나름 두어가지를 작심하고 산티아고 가는길 800km,36일간의 여정에올랐다. 출발하는 날부터 서울에는 폭우가,첫번째 도착지인 파리에는 철도노조의 파업으로 인한 교통체제의 마비등 악재가 나를 맞았다.시작부터 예상밖의 어려움을 맞으며 이번 도보여행중 매사에 더욱 겸손해 지라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서른두밤을 지낸 어느날 나는 어느새 Santiago de Compostella 에 와 있었고 그앞 광장의 가운데 서서 눈물을 훔치고 있는 나를 보았다.
그리고 또 100여일을 지내며 이제 한해의 끝자락에 서있다.
산티아고로 출발하면서 다짐했던대로 과연 나는 스스로를 얼마나 변화 시켰는가 자문하면서.....
아침에 눈을뜨면 걷는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수있는것이 없는곳이 산티아고로 가는 기나긴 길이다.사방을 둘러보아도 추수끝의 휑한 밀밭만이 동공을 채운다.어느날 맞게되는 채 수확하기전의 포도밭은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다.한 송이 포도로 갈증을 풀고 새힘을 얻는다.먼지앉은 작은 포도송이 하나에서 얻는 기쁨이 이렇게 클줄은 예전엔 미쳐 몰랐었다.작은것 하나에도 감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음을 본다.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를 맞는 길.너무나 고요해서 순간순간 나를 잊을때도 있었다.그 길위에서 혼자걸어야 하는 800km의 걸음여정.때로는 지겹기도하고 너무나 정형화된 하루.그래서 손금을 보듯이 예측이 가능한 하루하루에 단조로움을 느끼기도 했다.어느 비오는날은 수증기로 뿌옇게된 안경을 연신 닦아내며,어느 햋볕이 강한날은 뙤약볕에 축축 늘어진 어깨위의 배낭을 뒤치고 눈으로 스며드는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속으로 되뇌었다.이게 무슨 미친짓인가 하고.
아무것도 볼것없는 이길을 왜 사서 고생하느냐고 스스로에게 묻기도 했다.
그래도 그 고생의 끝에서 나는 많은 가치를 본다.
산티아고는 발로 걷기보다는 마음으로 하는 여행이다.
무엇을 보기보다는,그길에서 만나는 모든것과 얘기를 나누며 하는 여행이다.어둠속에서는 내속의 또다른 나와 대화하며 때로는 싸우며 화해하는 여행이다. 수많은 우연들의 만남속에서 숙명을 만나게되는 여행이다.
아무것도 볼것이없는 외로운길,산티아고 가는길.볼것이 없어서 억지로라도 나를 바라보게된다. 이렇게 매일매일 나와 만난적이 언제 있었던가....
혼자있으면 찬 바람과 뙤약볕을 가릴수있는 옷가지 하나면 무슨 다른 욕심이 있을까? 50 리터의 배낭속에 들어있는 모든것들이 갑자기 무의미해지기 시작 했다.버리고,비우고 그리고 지우고 오리라는 출발때의 다짐에 힘과 용기가 생겼다.어깨를 짓누르던 배낭의 무게도,발바닥에 생겼다 터진 물집의 아픔도 깃털처럼 날려보낼수 있었다.
살면서 꼭 필요하리라고 양손에 꼭 움켜쥐고 있었던 모든것들이 오히려 나를 어렵고 힘들게하는 내 삶의 무게라고 산티아고 가는길은 말한다.
남의탓을 하고 다른이를 손가락질하던 순간순간들을 되돌아보면서 부끄러워 거울도 보지못한 날도 있었다.거울속에서 만나게될 내얼굴이 더럽고,추하고,무섭게 상상되었다.내가 손가락질하던 그들의 눈에 비친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어느 지독히도 더웠던날 오후,비워져있는 내 물병을 보고 채 반도 남지않은 자신의 물병을 선뜻 내게 내어주던 이는 다름아닌 사소한일로 그 며칠전 내가 불평을 했던 헝거리인 그 본인이었다.그래서 이길은 아주 작은일에서도 나를 돌아보게하는 반추의 길이다.
예순을 넘어,자기성찰의 시간을 갖는다며 떠난길 산티아고 가는길.
이제 그 여정을 마치고 100여일을 맞는 지금 내가 서 있는곳은 어디인가 되돌아보며 동시에 한해를 보내고 또 한해를 맞아야하는 길목에서 나는 다시한번 다짐해본다.
새해에는 더 많이 버리고 비우고 지우며 살겠노라고.
산티아고 가는길,Camino de Santiago,올 가을 내가 만나고 걸으며 기쁨과 눈물을 함께 주었던 그 길위에서 내게 스스로 약속했던 모든것들이 잘 지켜지는 한해가 되기를 기도하면서.
내 살아가는동안 결코 잊을수없는 소중한길,바로 산티아고 가는길이다.
그 길이 새해에 내게주는 말 , 持己秋霜 待人春風
우리 59회 동기들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사는 한해가 되어보자.
새해에는 우리 모두 건강한 가운데 소망한 모든것들이 이루어지는 귀한 한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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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UPDATE: 2011.01.01 - 04: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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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그 때의 외침들
북한에서 그냥 살아도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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