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저녁 잠을 청 하려고 마신 포도주 한잔이 오히려 각성제가 되었는지 잠깐 눈을 붙였는가 했는데 아직 이른새벽 이다.
곤한잠에 빠진 아내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살며시 침대를 빠져 나왔다.
책상위 달력에 표시해 놓은 이런저런 메모를 보다보니 불현듯 친구들 생각이 나기에 비록 많이 늦었지만 새해인사겸 소식을 전하려 자리에 앉았다.
다음주면 벌써 새해도 한달이 지날 모양이니 그렇다면 이곳 치앙마이에 온지도 거반 두달이 지나는 셈이다.
정착에 필요한 잡다스런 일들로 한달 가량을 소진한것 같고,그후 한달은 아마도 세월을 잊고 살았나 보다.
오늘 밤에는 막내딸네 다섯식구가 일주일 예정으로 온다고 하니 이곳에 온지 두달만에 벌써 세번째 손님을 맞게 되나보다.
지난 12월3일,방콕을 거쳐 이곳 치앙마이에는 12월6일에 도착했다.
그동안 태국에는 꽤 여러번 왔었지만 방콕과 파타야,푸켓등 주로 남부쪽 이었고,치앙마이는 작년 2월에 체험생활차 잠시 한번 왔었으니 따지자면 이번이 두번째 인 셈이다.
그러나 막상 치앙마이 공항에 내리고 보니,갑자기 황량한 벌판에 벌거벗은채 혼자 서있는 것 같은 기분이 한순간 내 온몸을 감싸는듯 했다.
그동안 해왔던 수많은 해외출장과 여행의 경험은 오직 여행 이었을뿐,이곳에 살기 위해 남의 나라에 온것과는 완연히 다름을 실감케 했다.
소위 대한항공의 밀리언 마일러인 내가 고작 다섯시간 떨어진 태국의 작은 도시에서 잠깐이나마 그렇게 두려움 가운데 서 있게 될줄은 미쳐 상상하지 못했었다.
이제껏 2백만 마일 가까운 거리를 날아 다니면서 수많은 도시에서,수많은 경험을 해 보았지만 이번 만큼은 그 어느곳 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황량함,외로움등 신파극에나 나롬직한 유치한 단어들이 순간 뇌리를 스쳐갔다.
어느새 택시를 잡아놓고 나를 부르는 아내가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넋 빠진 사람처럼 그렇게 한참을 더 서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벌써 근 두달이 지난 지금.
나는 하루하루가 즐겁고, 재미있고,행복하다.
임대한 집은 우리부부가 편히 쉬기에 꼭 알맞고,새로 구입한 1'200CC 의 작은 승용차 역시 우리부부가 움직이기에 안성맞춤 이다.
아침이면 아내가 끓여주는 커피를 마시며 이무치치의 LP 한장을 걸어놓고 여유를 즐긴다.
일산에 있을때 하고는 또 다른 사치를 누려본다.
낮 시간에는 그동안 게을리했던 독서도 하며 선선한 저녁시간을 기다린다.
이곳의 지금 날씨는 조석으로는 긴팔 셔츠를 입어야 하니 대략 20도 내외쯤 되나보다.
식재료가 풍부하고 값 또한 저렴하니 저녁식단은 소찬 이나마 매일매일이 맛갈스런 음식으로 채워진다.
저녁식사후 에는 아내의 손을잡고 집 주변을 산책하며 이제껏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로 길을 덮는다.
그러다보면 어려웠던 시절,실상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을,의 힘들었던 기억 까지도 소중한 추억으로 승화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와 내 아내는 이곳에 오기를 참 잘했다고 서로에게 얘기해 주며 하루하루를 더 소중히 여기자고 다짐하곤 한다.
이제는 제법 이곳 지리에도 익숙해 졌으니 이후로는 이곳저곳 다니며,태국이라는 나라를 비롯하여 멀리는 인접한 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등 주변국가들을 여행하며 보고,듣고,느낀것들을 얘기해 볼까한다.
엊저녁 TV 뉴스를 보니 추위가 많이 누그러 졌다고 하니 다행이다.
우리나이에는 무엇보다 앞서 건강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눈길에서는 주머니에서 손 빼고 걸어야 하고.
여러명 친구들의 얼굴이 눈에 삼삼하다.
갑자기 이 이른아침에 소주한잔이 생각나는것은 아마도 자네,내 소중한 친구 때문인 모양이다.
모두들 건강하게, 매일매일을 행복한 시간으로 채워보자.
싸와디 크랍,프~언.
치앙마이에서 여운근.